카테고리 없음 / / 2023. 2. 18. 01:03

화려하고 역동적인 발레 스파르타쿠스 Spartacus

반응형

투구

볼쇼이 발레의 대표작

발레 스파르타쿠스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 고전발레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대부분 마린스키극장에서 제작되었다. 19세기까지 러시아수도는 페테르부르크였으며, 마린스키(구 키로프)는 페테르부르크 수도에 있으며 황실에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고전발레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게 된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나면서 수도는 모스크바로 바뀌게 되고 마린스키(구 키로프)가 아닌 볼쇼이 극장이 소비에트 제1의 공식적인 문화기관으로 지정되며, 새로운 위상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1950년대까지 볼쇼이 극장은 레퍼토리, 안무가, 무용수들까지도 마린스키(구 키로프)에 의지를 해야 했다. 마린스키(구 키로프)에서 만들어지고 성공한 레퍼토리와 안무가, 무용수들이 볼쇼이극장에 입성하던 시기였지만, 발레 스파르타쿠스는 이런 전통을 깨고 마린스키(구 키로프)와 다른 볼쇼이 스타일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아하고 섬세하고 고전적인 발레가 아니라 스케일이 크고 선이 굵으며, 저항정신, 격정이 휘몰아치는 남성적인 발레인 스파르타쿠스는 볼쇼이발레 대표작이 되게 된다.

 

안무가 야콥슨의 스파르타쿠스

발레 스파르타쿠스도 사실 마린스키(구 키로프)에서 만들어지기는 했다. 1956년 안무가 야콥슨이 만들었으며, 무용수가 200명이 넘게 등장하는 마린스키 사상 가장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공연이었다고 한다.

 

발레 스파르타쿠스에 주인공인 '스파르타쿠스'는 로마군단에 맞서서 봉기를 일으켰던 실제 역사상 인물로 스파르타쿠스가 크라수스라는 로마군단장한테 전쟁포로로 붙잡혀서 노예 검투사가 되고 각성해서 봉기하게 되지만 결국은 처형당한 이야기다.

야콥슨은 비극적인 스파르타쿠스의 봉기이야기보다도 파멸을 앞둔 로마제국의 공허한 화려함과 도덕적인 타락상에 초점을 맞춘 시각적인 발레를 만들었다. 야콥슨의 스파르타쿠스를 본 관객들이 말하기를 '고대화병과 벽화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 무대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토슈즈 대신 고대로마인들이 신던 샌들을 신고 춤을 췄고 발레에서 기본동작이라 말하는 턴아웃, 푸앵트 워크 등이 없는 발레로 유명했다.

 

야콥슨의 스파르타쿠스는 마린스키(구 키로프) 아주 성공적으로 공연이 되었고 이후 볼쇼이로 가지고 와 공연하게 된다. 당시 볼쇼이에서 최고의 스타발레리나 플리세츠카야가 여주인공 프리기아를 맡아 공연했고 이 발레작품은 볼쇼이의 해외공연 레퍼토리 중 하나로 뉴욕에서 공연되었다. 하지만 발레 스파르타쿠스는 뉴욕공연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본국에서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알맹이라고는 없는 무미건조한 그런 작품이다. 모스크바가 이 작품에서 뭔가 중요한 걸 보고 있다면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만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발레 스파르타쿠스는 볼쇼이 무대에서 곧 내려지게 된다.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

볼쇼이는 소련의 공식적인 제1 문화기관으로서 볼쇼이의 위상에 걸맞은 좀 더 고전적이고 소련문화의 긍정적인 요소를 부각할 수 있는 작품을 다시 찾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37살에 볼쇼이 단장이 된 유리 그리고로비치(Yury Nikolayevigh Grigorovich)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당시 키로프에서 공연할 때 야콥슨의 공연에 검투사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고 당시 예기나 역을 춤췄던 셀레스트라는 발레리나와 곧 이혼하기는 했지만 결혼한 부부사이였다. 아내가 주역을 했던 작품이라고 해서 다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작품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스파르타쿠스의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로비치는 대본을 새로 쓰고 야콥슨과 키로프 공연에서 갈등이 심했다고 유명한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에게 음악수정을 부탁한다. 야콥슨 버전은 시각적으로 굉장히 화려한 공연이었지만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무대가 굉장히 단순하다. 텅 빈 무대에 돌 몇 개와 조명에 따라서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휘장이 무대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대를 만든 무대미술가 비르살라제가 레닌상을 받는다. 공연을 보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단순한 무대지만 무대가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준다. 단순한 장치들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공연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무대가 단순하니 인물들의 드라마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점이 있다.

 

스파르타쿠스의 주요 장면과 구성

첫 장면부터 아주 인상적이다. 어둠 속에 조각상처럼 로마장군 크라수스가 등장하고 이어서 로마 병사들이 군무들을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면 사람들이 왜 스파르타쿠스를 매혹적인 남성이라고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있다. 특히 크라수스가 몸을 활처럼 말아서 높이 도약하는 장면들이 굉장히 압도적이고 매력적이다. 악연인 크라수스가 너무 멋있게 나오다 보니 주인공인 스파르타쿠스가 별로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로마 병사들 뒤로 노예들이 고개를 허리까지 깊이 숙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그 가운데 우뚝 선 스파르타쿠스를 보는 순간 그런 걱정은 사라지게 된다. 스파르타쿠스의 독무를 추기 시작하면 앞에 크라수스의 춤은 자기 과시적인 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3막 12장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막의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9개의 장면 뒤에 독무가 하나씩 구성되어 있다. 스파르타쿠스, 스파르타쿠스의 연인 프리기아, 로마 장군 크라수스, 고대로마의 고급매춘부(헤타이라) 예기나의 독무가 아홉 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로비치는 이런 독무를 모놀로그라고 부른다. 텅 빈 무대에 핀 조명을 받으면서 추는 독무인 모놀로그는 춤추는 무용수의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다른 작품에도 독무가 있지만 그리고로비치가 구성한 독무들을 보면은 주인공의 내면에 더 심리적으로 몰두하게 만든다. 스파르타쿠스를 심리무용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만든 모놀로그가 만들어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바실리예프의 스파르타쿠스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구성, 텅 빈 무대지만 인상적인 무대, 좋은 음악 소비에트 최고의 발레를 위한 모든 요소들이 갖추어져 있는 그런 공연이었는데, 거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초연 당시 주역을 맡았었던 무용수들이다. 이 무용수들은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바실리예프가 스파르타쿠스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전설적인 공연으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할 만큼 아주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바실리예프는 볼쇼이 무용학교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니진스키와 자주 비교됐었던 인물이다. 러시아의 한 비평가는 '바실리예프는 무대 위에서 영혼의 조형미를 빚어내는 무용수이다.'라고 했다. 영웅적이고 남성적인 춤을 멋지게 추는 육체적인 조형미가 아닌 그 영혼의 조형미 안에 인간적인 얼굴을, 심리를 부여할 줄 아는 그런 무용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노예가 된 스파르타쿠스의 울분, 자유에 대한 의지, 크라수스에 놀잇감이 되어 앞이 보이지 않는 투구를 쓴 채 동료 검투사를 살해하고 나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번뇌, 분노 이런 것들이 곧바로 관객들에게 동화되는 춤을 춘다는 것이다.

스파르타쿠스가 봉기를 다짐하고 무대를 가로질러 회오리처럼 날아올 때의 모습은 대포에서 포탄이 튀어나오는 거 같다고 관객들이 이야기했었다고 한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는 분명히 바실리예프였기에 더 강렬한 게 연출된다. 스파르타쿠스 형상의 핵심은 처음부터 파국이 예정된 싸움을 벌인다라는데에 있다. 공연에서 격렬한 전투 끝에 스파르타쿠스 병사들의 다 격퇴당하고 스파르타쿠스 혼자서 로마군단에 대적해서 싸워야 하는 장면에서 잠시 멈춘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직감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광기 어린 크라수스와 로마 병사들이 창을 자기 몸에 꽂도록 팔을 벌려서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창에 찔려 허공으로 추켜올려진다. 그 장면은 예정된 운명에 순응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기억될 죽음으로 남는다라는 점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연상시키게 된다. 스파르타쿠스는 고전적인 발레가 아니다. 유리그리고로비치는 인간이 품게 되는 열정 욕망 거칠고 때로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권력의 광기 자유에 대한 열정 자신의 운명을 미리 가늠하지 않고 뛰어드는 용기 피할 수 없는 파국의 체험 아주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세계가 스파르타쿠스에 담겨있다.

바실리예프는 인터뷰에서 '스파르타쿠스가 바위 같은 인물일 필요가 없다. 이 인물의 힘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힘에 있다. 그는 의무와 양심, 시작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인간이다.'라고 설명했다.

스파르타쿠스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물러서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 힘이 되는 발레작품일 것이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