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3. 1. 30. 23:55

한 점의 그림에서 시작된 고집쟁이 딸 La fille mal gardee

반응형

그림 한 점에서 시작된  발레작품 <고집쟁이 딸>

발레작품 <고집쟁이 딸>은 한 점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안무가 장 도베르발(Jean Dauberval)이 우연히 길을 가다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림 속 배경은 농가의 작은 창고였으며, 딸은 울고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야단을 치고 있고 그 뒤에는 몰래 도망을 치는 거 같은 젊은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은 18세기 프랑스의 로코코 화가 피에르 앙투안 보두엥의 그림으로  장 도베르발은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게 되었다.

 

여러 안무가들과 버전들의 특징

1789년 장 도베르발(Jean Dauberval)이 초연 안무와 대본을 맡아 프랑스의 보르도 대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이후 1903년 알렉산더 고르스키(Aleksandr Alekseev Gorskii), 1960년 영국의 로열발레단의 프레데릭 애쉬튼(Frederick Ashton)에 의해 재안무(헤르텔의 음악 대신 헤롤드의 음악과 파니 엘슬러 파드되추가) 되어 공연되었다. 현재 장 도베르발 버전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파니 엘슬러'는 이 작품을 통해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첫 데뷔를 했다. 당시에는 관습적으로 기존의 발레 작품에 새로운 음악을 추가하기도 했는데, 이때 파니 엘슬러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1832)의 음악을 추가하게 된다. (추가된 부분은 파니 엘슬러 파드되 도입부와 여자 바리에이션에 음악 '무엇이든 다 고치는 묘약'과  '여러분 들어보세요' 추가되었다.)

 

니콜라이 2세의 연인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발레리나 '마틸다 크셰신스카(Mathilde)'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고집쟁이 딸이었다. 그녀는 리즈 역할을 다른 발레리나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발레리나 '올가 프레오브라젠스카'가 리즈역을 맡게 되면서 엄청난 질투심에 빠지게 된다. 그 당시 고집쟁이 딸 공연에서는 실제로 닭이 등장하곤 했다. 마틸다는 올가가 리즈바리에이션을 할 때 닭을 풀어놓도록 무대관리자를 매수했다. 결국 닭들은 무대를 가로지르고 오케스트라 피트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올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끝까지 춤을 추었고 관객들은 오히려 감명을 더 받았다고 한다.

 

프레데릭 애쉬튼은 마리우스 프티파의 독창적인 마임 'When I'm married'를 자신의 버전에 넣었고 이 마임은 현대 영국 발레의 창시자 중 한 명이자 발레뤼스의 발레리나 타마라 카르사비나가 전수했다.

 

초연(도베르발)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지긴 했으나 프레데릭 애쉬튼은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서퍽을 생각하면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었다.

프레데릭 애쉬튼은 파니 엘슬러 파드되에서 일반적인 그랑파드되 형식인 앙트레 > 아다지오 > 남자 솔로 > 여자 솔로 > 코다 순이 아닌 도입부 > 여자 솔로 > 아다지오 > 남자 솔로 > 코다 순으로 배치하였다.

 

프레데릭 애쉬튼 버전은 엄마'시몬'에게 둘 사이를 인정받고 마을사람들에게 축복받으며 행복해하며 막이 내리지만

고르스키 버전에서는 그 이후로 장면이 전환되어 여러 디베르티스망을 보여준다.

콩쿠르와 갈라공연에서 유명한 고집쟁이 딸 그랑파드되는 프티파와 이바토프가 아닌 고르스키가 제작했고 헤르텔의 음악에 드리고, 들리브, 푸니 등의 음악을 사용했다.

 

고집쟁이 딸의 '알랭', 돈키호테의 '가마슈'를 돈이 많은 귀족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이유는 지배계층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고집쟁이 딸>의 이야기가 현대 관객들에게는 진부해 보일 수 있으나 사랑이 물질적인 부를 이긴다는 내용은 당시에 혁명적이었다.

 

실제로 고집쟁이 딸 초연되고 약 2주 뒤 프랑스에서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 일어난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