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데(Scheherazade)는 피겨의 여왕이라 불리는 김연아의 작품으로 한 번쯤은 다 들어봤을 것이다.
오늘은 발레 <세헤라자데>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발레 <세헤라자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클래식발레인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돈키호테 등과는 다르게 이국적인 안무와 음악, 갈비뼈가 드러나고 가슴을 강조하는데 현재 브라탑 같은 의상 등 동양적인 의상과 무대미술이 만나 새로운 발레의 시작을 알렸다.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
페르시아의 왕 샤리아르는 왕비와 노예가 불륜사이라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왕은 이후 그 둘을 죽이고 여자에 대한 불신하고 혐오하게 됐다. 여자를 믿지 못하게 된 왕은 나라에 모든 처녀들은 매일 불러들여 같이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죽이는 일을 1000일 동안 반복했다. 하룻밤 자고 다음날 죽이고 또 하룻밤 자고 다음날 죽이고 이런 일이 계속되니 나라의 모든 처녀가 사라지게 생길 위기에 놓였다. 이때, 이 일을 해결하겠다며 한 재상의 딸인 세헤라자데가 스스로 왕비가 되었다. 세헤라자데는 왕에게 매일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재미있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끊고 다음날 밤으로 이야기를 넘기는 것을 천일동안 반복했다. 이야기가 궁금한 왕은 세헤라자데를 죽일 수 없었고 1001일 동안 반복되니 왕의 마음도 누그러져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가 바로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이다.
발레 <세헤라자데>는 그 1001가지의 이야기 중 한 가지를 다루고 있고 약 40분으로 이루어진 단막발레이다. 1910년 만들어진 세헤라자데는 발레뤼스 발레단의 파리 첫 번째 데뷔작품이며, 과거 러시아 제국이 가지고 있던 도양에 대한 환상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아리안의 술탄(최고권위자) 샤리알, 샤리알이 아끼는 첩 소베이다, 황금노예, 샤리의 남동생 샤크헤즈만, 환관 등이 있다.
아리바이의 어느 왕국, 술탄 샤리알과 그가 아끼는 첩 소베이다는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샤리알의 동생 샤크헤즈만이 샤리알의 첩들을 시험해 보자고 제안한다. 샤리알과 그의 동생 샤크헤즈만은 사냥을 가는 척하기로 한다. 샤리알이 자리를 비우자 소베이다와 샤리알의 첩들은 보석으로 환관을 매수하여 성 안에 있는 3개의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환관이 보석에 정신 팔린 사이 열쇠를 가로채 문을 열고 3번째 문에서 황금노예가 등장한다. 소베이다는 황금노예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신분에 상관없이 다 같이 춤을 추며 즐기고 있다. 그때 샤리알과 샤크헤즈만이 돌아온다. 샤리알은 가장 아끼는 소베이다만 남겨두고 모두 죽인다. 황금노예마저 죽자 소베이다는 큰 충격을 받았고 샤리알에게 살려달라 애원한다. 이에 샤리알은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샤크헤즈만이 샤리알에게 소베이다는 황금노예와 불륜을 저질랐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소베이다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살하며 끝이 난다.
발레 <세헤라자데>의 탄생
발레뤼스가 공연했던 또 하나의 전설적인 발레 <세헤라자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아랍의 설화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를 다룬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동명의 교향시 <세헤라자데>에 기초하여 안무가 미하일 포킨에 의해 창작된 발레뤼스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다. 발레 <불새>보다 열흘 앞서 공연된 음악과 춤, 의상과 무대에 넘쳐흐르는 오리엔탈리즘의 정조로 인해 역시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세헤라자데는 전설적인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파리 패션과 사교계에 오리엔탈 스타일의 대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관능적이지만 비극적이고 잔인한 사랑의 이야기 세헤라자데
발레뤼스의 첫 시즌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후에 디아길레프는 두 번째 시즌을 구상하다가 평소에 좋아하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교향시 세헤라자데를 듣고 발레의 영감을 떠올리게 된다. 이 구상을 발레뤼스의 예술가들에게 제안한다. 가장 먼저 신속한 반응을 보였던 이는 알렉산드르 베누였다고 한다. 그는 음악에 맞추어 바로 대본을 짜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음악에서 표현된 이야기와 발레의 이야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원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여주인공인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작품으로 대부분 항해에서 일어난 모험 장면들을 묘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발레에서는 교향시가 묘사하는 바다의 주제 대신에 다른 것이다. 즉, 발레에서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서문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부정한 왕비를 죽이게 되고 회의와 갈등에 빠져 여자를 믿지 못하게 된 샤리아르 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평가들의 이야기로는 아마도 대본을 만든 베누아가 세헤라자데라는 이름에서 하렘 그리고 거기에 사는 왕과 비빈들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또한 왕과 왕비의 연인이라는 삼각관계 사랑과 질투 분노에 관한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발레의 주제로 더 적합하다고 여겨진 듯하다. 그래서 디아길레프와 베누아는 음악이 묘사하는 바다와 모험의 주제 대신에 <아라비안 나이트> 서문에 나오는 샤리아르 왕과 그의 형제 그리고 왕비에 관한 이야기를 줄거리로 선택했을 것이라고 한다.
동양의 영감
세헤라자데가 파리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보다 넘쳐나는 동양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불새>에서의 러시아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랍의 동양적 세계의 정조가 파리 문화계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한 동양성의 분위기는 첫째로 남녀주역무용수들, 동물적으로 관능적이며 매력에 넘치는 황금노예역을 맡은 발레뤼스의 전설적인 발레리노 바츨라프 니진스키 그리고 외로움에 지쳐 젊고 정열적인 노예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왕비 조베이다 역을 맡은 이다 루빈슈테인의 춤에 의해 창출되었다. 두 무용수는 동방의 이야기 속에 거칠고 충동적이지만 자연스러운 그리고 야만적이고 원초적이지만 생명력 넘치는 몸에 미학을 담아낸 안무가 포킨의 의도를 완벽하게 실현해 주었다. 포킨은 회고록에서 니진스키와 루빈슈테인을 칭찬했다.
화가 레프 박스트가 맡은 의상과 무대는 니진스키와 루빈슈테인의 춤만큼이나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박스트가 디자인한 의상은 고전발레의 튀튀와는 전혀 달랐다. 박스트는 이사도라 던컨이 즐겨 입었던 튜닉이나 몸에 꼭 맞는 바디스타킹을 특히 좋아했고 무용수의 신체를 노출시키는 커팅으로 무용수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주는 의상을 디자인했다. 또한 보석, 베일 깃털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사용해서 무용수의 움직임을 반복하거나 확장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한다. 하렘의 몽환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을 뿐 아니라 안무가 포킨이 의도했던 춤의 즉흥성과 자연스러움에 크게 기여했던 의상들로 박스트는 모델이 아니라 움직임에 옷을 입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화려했던 박스트의 무대는 결코 춤의 조연이 아니었다. 발레 <세하라자데>의 가장 큰 매혹은 박스트가 만들어낸 원색적이고 대담한 색채가 넘쳐나는 회화적 무대 미술이 창조의 동양적 환상이었다고도 한다. 새롭고 예기치 않았던 가치들을 창조해 내는 유럽인들로서는 생각하게 어려운 색채조합은 세헤라자데의 원시적이고 이국적인 동양성을 창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백색의 튀튀를 입은 무용수가 우아한 춤을 추는 지젤과 같은 무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색채들이 관객의 눈앞에 쏟아졌다. 오렌지색과 에메랄드색의 발레뤼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놀라워했다. 미래의 색채조합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보여준다.
나른하고 몽환적이고 비밀스러운 하렘의 분위기를 연출한 박스트의 의상과 무대는 극장을 넘어 파리 문화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파리의 패션계에서는 동양풍이 일대 유행하였고 폴 푸아레와 칼로 쇠르 디자인 하우스에서는 박스트의 스케치로부터 영감을 받은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실내장식과 광고 등에서도 동양풍의 유행이 일어났고 심지어 사교계에서도 동양품의 의상을 입고 파티를 동양풍으로 연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발레 <세하라자데>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양의 매혹, 세헤라자데
포킨의 자연스럽고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안무, 예사롭지 않은 동양적 실루엣과 선을 그려낸 이다 루빈슈테인과 반인반수처럼 관능성을 표현해 낸 니진스키의 춤, 그리고 동양적 환상을 한 폭의 회화처럼 구현한 박스트의 무대 등이 결합된 종합예술. 세헤라자데의 이국적인 동양성은 다시 한번 유럽에 폭발적인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세헤라자데의 주역을 맡은 발레리나, 이다 루빈슈테인
디아길레프와 발레뤼스의 연이은 대성공을 가져다준 세헤라자데는 떠들썩한 명성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일화들을 가지고 있다. 일화 중 하나인 여주인공 조베이다 역을 춘 발레리나이다 루빈슈테인에 관한 일화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루빈슈테인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발레리나는 아니었지만 배역에 어울리는 독특한 외모와 체격을 가진 덕분에 조베이다 역으로 발탁되었다. 사실 놀랍게도 그녀는 정규발레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포킨은 그녀의 기술적 약점이 덜 드러나고 체격이라는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내는 안무로 즉 움직임의 선적 느낌을 주로 이용하도록 안무했고 이러한 포킨의 의도는 적중했던 것이다.
이다 루빈스테인은 앞선 작품 <클레오파트라>에 이어서 <세헤라자데>의 주역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이 발레리나는 여러모로 안나 파블로바, 타마라 카르사비나 등과는 달랐다. 루빈슈테인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신의 특이하고 이국적인 스타일을 대담하게 드러냈고 심지어 검은 표범을 키우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세헤라자데 이후 루빈스테인은 디아길레프와의 불화로 인해서 더 이상 발레뤼스의 무용수로 활동하지 않았다. 짧은 인연이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가졌던 이다 루빈테인은 발레뤼스의 상징적인 무용수로 기억되게 한 데는 세로프의 그림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