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상징=발레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해 발레리노가 되었다면 믿을 수 있나요?
현시대에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발레가 권력을 드러내는 도구였다.
바로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시 발레는 무대에서 공연되는 예술이 아니라 귀족들이 직접 춤을 추며 즐기는 여흥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루이 14세는 직접 발레작품에 무용수로서 무대에 오르며, 무대예술로써 발전시킨 스타발레리노였다.
발레광 루이 14세, 발레계에 써 내려간 굵직한 역사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루이 14세는 발레를 왕의 권력과 위엄을 드러내는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가 가진 여러 타이틀 중 가장 유명한 '태양왕'도 발레작품인 <밤의 발레>에 출연하여 얻은 별명이다.
1653년, 15살 나이에 '태양신 아폴로'역을 맡아 자신이 프랑스 왕국의 절대적인 축이자 '태양'같은 존재임을 귀족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은 2000년도에 개봉한 영화 <왕의 춤>에 잘 나와있다.
물론 당시의 발레는 현재와 같은 무대예술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대장치를 적극 활용해 무대에 올랐다. 그렇다 보니 당시에는 귀족들의 춤 실력에 따라 권력이 결정되기도 하고, 왕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이 높은 지위를 상징하기도 할 정도로 무용이 매우 중요했으며, 정치적 의사와 권력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루이 14세와 비슷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효명세자로 예술적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역시 세도정치를 억제하고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궁중무용인 '정재무' 창작에 힘쓰기도 했다.
현시대에 비추어 보면 발레 작품의 역할을 통해 귀족들이 자신의 지위를 드러낸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골프라는 스포츠를 통해 정재계 인물들이 사교활동을 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발레가 필수적인 사교의 도구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과거시대 춤과 공연이란 어떠한 대상에 강력한 권력을 부여하는 상징적, 정치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발레의 기틀을 다진 루이 14세
루이 14세는 발레의 기틀을 다져 하나의 예술장르로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발레용어는 프랑스어로 되어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레가 러시아춤이라고 알고 있지만, 발레가 처음 시작된 곳은 이탈리아다.
앞서 말했듯이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발레는 원래 귀족사회에서 추던 춤이었지만, 16세기 이탈리아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프랑스의 '앙리 2세'가 결혼하며 프랑스에 전래되었고 이것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루이 14세는 1661년 왕립무용아카데미라는 서구 최초의 무용기관을 만들어 예술로써 기반을 닦아냈으며, 이것이 현재의 국립음악무용아카데미인 파리오페라극장(Opera de Paris)의 전신이다.
아카데미의 교장이었던 '피에르 보샹'은 루이 14세의 무용교사였으며, 발레에서 매우 기본적인 자세인 턴아웃을 활용해 발레의 5가지 기본포지션을 만들어냈다. 이 다섯 개의 기본 포지션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오는 것으로 영어로 이야기한다면 알파벳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발레가 체계화되고 전문화될 수 있는 뿌리를 만들어준 인물이 루이 14세입니다.
이 같은 루이 14세의 발레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귀족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왕이 출연하는 발레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귀족사회에 발레교육이 시작되었다. 물론 당시의 발레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었지만, 이 결과 발레가 귀족사회에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가 나이를 먹고, 왕립아카데미에서 전문적인 테크닉을 사용하는 발레리노들이 등장하면서 귀족들과 왕이 직접 공연을 하는 것은 사라져 갔지만 그럼에도 발레는 귀족사회의 필수교양으로 유지되었다.
그는 평생 약 27편의 공연에 주역으로 무대에 섰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을 했다고 하니 현시대의 무용수들과 다를 바 없으며, 발레에 대한 무한 애정과 열정이 굉장한 인물이었다. 세계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루이 14세가 발레사에 이렇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니, 굉장히 흥미롭다. 루이 14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룬 프랑스발레는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자랑하며,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낭만발레가 발전하고 큰 인기를 끈 이유도 이런 탄탄한 뿌리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