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3. 2. 15. 01:30

다양하게 재해석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반응형

발레 예술가들은 라브롭스키의 안무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60년대 탄생하여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전성기를 이끈 존 크랑코와 영국 로열발레단의 케네스 맥밀란이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 모두 라브롭스키 안무의 영향을 받았다.

 

케네스 맥밀란과 누레예프

이 중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국으로 망명한 소련 무용수 아돌프 누레예프와 그와의 호흡으로 마흔 중반에 재기에 성공한 마구 폰테인이 주역을 맡게 되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둘의 만남은 18세기 전반에 탄생한 러시아의 발레가 당시 역사가 30년 정도였던 영국 로열발레단에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맥밀란은 라브롭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리브레토를 수정 없이 유지하면서 멜로드라마적 색채를 더욱 강조하는 안무를 보여줍니다. 동료 무용수들로부터 시기의 대상이었던 누레예프는 부상투혼까지 보여주면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누레예프는 런던 코벤트가든 콜리세움 극장에서 자신이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다시 무대에서 선다. 그의 안무에는 러시아 발레 전통의 로맨틱한 섬세함과 맥밀란의 안무에서 다져진 현대적 감각이 모두 녹아있다. 줄리엣을 단순히 사랑에 빠진 소녀가 아닌 사건의 진행과 함께 성장하다가 결국엔 번민에 휩싸이는 강인한 여인으로 그려낸 맥밀란의 해석 또한 누레예프에게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누레예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셰익스피어에 원작에 대한 과감한 해석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안무에서는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전 잠시 사랑했던 로잘리나가 등장할뿐더러 로렌초 신부도 엄숙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남성무용수들의 감상과 기량이 강조된 누레예프의 안무는 니진스키를 떠오르게 한다.

 

섬세하고 절제된 유리 그리고비치 로미오와 줄리엣

이즈음 러시아에서도 라브롭스키의 안무 이후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하고 있었다. 바로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안무로 1978년 파리 오페라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라브롭스키의 기존 리브레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시몬 비르살라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유리 그리고비치의 안무 특유의 섬세하고 절제된 몸짓들이 인물들이 겪는 격정의 밀도를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든다. 이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듬해부터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볼쇼이극장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다.

이 작품은 2010년 재창작 기회를 얻었다. 여든이 넘은 그리고로비치가 젊은 아티스트들과 의기투합한 이 작품은 볼쇼이극장 초연에서 줄리엣 역을 맡았던 나탈리야 비스메르트노바에게 헌정하여 현재까지 볼쇼이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젊은 안무가들의 재해석(앙줄랭 프렐조카쥬,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서구 유럽의 젊은 안무가들은 이미 20세기부터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해석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쥬의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리옹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일렬로 배치된 환기구멍이나 벽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이용해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연출해 낸다. 만화 아티스트 엔키 빌랄과의 협업이 빛을 발했다. 온통 어두운 무대 위로 형무소장의 딸 줄리엣과 이주민 청년 로미오의 사랑이야기 펼쳐진다. 무용수들은 때로는 부랑자들의 칼부림 같은 뒤엉킴을, 때로는 전체주의적 통제 속에서 숨죽인 수감자들의 무심한 대오를 표현한다. 삼엄한 감시를 뚫고 어렵사리 얼굴을 마주한 연인들은 격렬한 몸짓으로 자유롭게 사랑할 권리를 주장한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도 1996년 몬테카를로발레단을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을 안무했다. 모나코의 몬테카를로발레단은 발레뤼스의 후신이기도 하다. 무대 환영주의를 탈피한 마이어는 크기를 달리하는 대형 백색스크린들로 둘러싸인 무대 위에 장면마다 바뀌는 파스텔 조명만으로도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이 작품에서 마이요는 베로나 영주역과 로렌초 신부역을 합쳐 하나의 단일한 인무를 창조한다. 그리고 이 인물의 좌우로 두 명의 무용수가 동반 등장한다. 이 두 무용수들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공연의 시작과 함께 아무도 없는 텅 빈 무대에 등장하여 연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한다. 특히 웃고 떠드는 베로나 젊은이들 앞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유사한 내용의 비극적 로맨스를 인형극 형식으로 공연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랑극단을 차용하고 있다. 마이요는 인물구성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있어서도 플래시백이나 슬로 모션을 사용하는 등 발레무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안무가인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러한 서구유럽 안무가들의 실험적 공연보다는 온건하게 느껴진다. 클래식 발레의 우아함을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정신의 필요성을 모두 의식하면서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을 창작해오고 있다. 201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초연 이후 6년의 시간이 지나 2017년 볼쇼이극장에 입성한다. 라트만스키는 원작의 사건이 일어나 시공간적 배경을 달리하거나 눈에 띄는 오브제를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새로움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러시아 발레 전통이 고수해 온 세밀한 사건 전개와 팬터마임적 움직임, 르네상스 풍의 의상 및 배경 등 큰 틀은 그대로 따르면서 더욱 섬세해진 몸짓과 감정연기로 현대관객을 사로잡았다.

스타일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해피엔딩을 선사하려 했던 프로코피예프와 피오트롭스키, 라들로프의 기획까지 참조하고 있다. 로미오를 약속 장소에 조금 더 일찍 도착하게 하여 이 연인들의 사랑이 죽음이 아니라 삶을 향하려 했던 선배들의 시도처럼 라트만스키는 독극물을 마셔 죽어가는 로미오와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는 줄리엣이 서로를 알아보게 한다. 연인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